Page 177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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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암잡록 下 177


            로운 빛과 모습이 나타났으며,스님은 두 곳에서 모두 게송을 읊
            었는데 다 범자(梵字)로 씌어 있다 한다.




               48.쇠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맹세



               원대(元代)에 복건 도운사(都運司)모(某)씨의 생일날,서리(胥

            吏)인 주청(周淸)이 생일잔치를 마련했는데 상 위에 쇠고기가 있었
            다.이에 도운사는 급히 쇠고기를 치우게 한 후 여러 손님에게 천
            천히 설명하였다.

               “내 젊은 시절 외가의 아우 아무개와 함께 한 백정집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막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에 그 백정은 왼손에는
            칼을 들고 오른손에는 송아지가 있는 암소 한 마리를 끌고 와 처

            마 기둥에 묶고서 그 앞에 칼을 놓고 떠나가자 송아지가 갑자기
            칼을 입에 물고 채소밭으로 달려가 발로 땅을 파헤치고 칼을 묻

            어 버렸습니다.백정이 돌아와 칼이 보이지 않자 화를 내기에 그
            까닭을 말해 주었더니,그는 칼을 찾은 후 문턱에 걸터앉아 한참
            동안 탄식을 하다가 그 칼로 자기의 머리를 깎고 처자를 버린 채

            출가하여 불법을 배웠는데,지금 그가 어디에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후 외가 동생이 벼슬차 강서 지방으로 부임하는 길에 배를
            타고 황하를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황량한 강기슭에서 쉬게 되었
            는데 건너편에 어슴푸레하게 큰 집이 한 채 보였습니다.그 저택

            은 높고 넓었으며 엄숙하고 반듯하게 정돈되어 마치 제왕의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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