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2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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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하여 아들에게 주는 시 한 수를 받아 적게 한 후 태연히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부채를 흔들면서 가족들을 만류하며 말하였다.
“나는 조용히 있을 것이니 너희들은 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
말을 마친 후 눈을 감고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세상을 마쳤
다.그 당시 날씨가 몹시 더웠는데도 시신을 염하려고 보니 얼굴
엔 미소를 머금고 더욱 깨끗하고 윤기가 있었다.
용암유고(庸菴遺藁) 몇 권이 세상에 전해 오고 있다.
52.세상에 나오는 엉터리 어록들
요즘 세상에는 머리 깎은 외도가 한 무리 있는데,그들은 불조
께서 남긴 말씀을 모아 실속 없는 책으로 만들고는 이를 어록(語
錄) 이라 하여 신도들의 시주로 간행하고 있다.그들은 원래 깨달
은 바도 없는 데다 불조 화두의 근본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현학적인 말로 어리석은 자신의 해석을 잘못 붙이니 아는
사람이 보면 두려운 마음에 흐르는 땀을 금할 길 없을 것이다.
소천강(炤千江)은 사명(四明)사람이며 원직지(圓直指)는 천태
사람이며 혁휴암(奕休菴)은 양주 사람인데 세 사람 모두 온갖 번
뇌에 얽힌 범부에 불과하며 정견(正見)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도
마음대로 어록 을 발간하였다.휘(暉)장주는 은현(鄞縣)사람으로
조천강에게 귀의하여 금강경을 조목마다 분석하고 제멋대로 송을
붙여 간행 배포하였다.
내가 동곡사(桐谷寺)에 있을 무렵 휘장주가 찾아왔기에 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