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9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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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암잡록 下 179


            나 다만 문 안에 던져 줄 수 있을 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외
            동생은 그가 집으로 가는 길에 우리집을 들러 내 옷을 빨리 보내

            라고 전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는데 두 달이 지나자 과연 임지에
            옷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많은 손님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모두가 쇠고기를 먹

            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였다.




               49.정토종의 말폐,백련칠불교(白蓮七佛敎)



               정토교(淨土敎)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은 많은 경전에 자세히
            실려 있다.그러나 정토교가 중국에 유행한 것은 동림 혜원(東林
            慧遠:晋代)법사부터 비롯된 것이다.법사는 유․뢰(劉雷)등 제현

            을 모아 연루(蓮漏:물시계)위에 이름을 새기고 하루 여섯 때 예
            불을 올리며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원하였는데,정성이 간절하

            여 임종 때 각각 그들의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전조(원대)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의 근기가 얕고 거짓 마
            음이 나날이 돋아 ‘백련사’라는 이름을 빌려 밥과 옷을 구하는 자

            가 종종 있었다.연우(延祐:1314~1320)연간에 우담 도(優曇度)
            법사가 대궐에 나아가 상소를 올려 그 폐단을 바로잡았다.그리고

            물러 나와서는  여산보감(廬山寶鑑)  몇 권을 저술하여 정교(正敎)
            를 밝히고 이단을 배척하여 동림사(東林寺)의 옛 일을 일신하였다.
            그러나 우담법사가 입적한 지 백 년이 채 못 되어 용렬한 자들이

            그의 이름을 도용하여 이른바 백련칠불교(白蓮七佛敎)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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