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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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암잡록 上 39
“대왕께서 많은 사찰의 주지를 공양하기 위함이라 말하고서도,
이제 주인의 자리는 없고 왕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아 모든 주지
들을 양 옆으로 줄지어 앉히고 심지어는 땅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자도 있으니,이는 순라 도는 병졸들을 공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예법에는 이렇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황공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사과하고 곧장
법좌에서 내려와 많은 사찰의 주지에게 예의를 표한 후 손님과
주인의 자리를 나누어 모든 관리들은 양 옆의 주지가 앉았던 곳
으로 물러나 앉았다.공양이 끝난 후 왕은 법사의 손을 잡고 말했
다.“우리 법사가 아니었더라면 예의를 차리지 못할 뻔하였습니
다.”
아!이른바 상황에 맞게 방편을 써서 사람의 마음을 열어 줄
수 있는 사람이란 봉산법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8.혐의받을 행동을 미리 막다/허곡(虛谷希陵)스님
허곡(虛谷希陵)스님이 앙산사에서 사직하고 경산사로 부임해
가는 도중에 원주(袁州)성에 이르니 사방에서 시주하는 신도들의
돈과 폐백 등이 수북히 쌓였다.허곡화상은 서서히 이를 거절하며
말하였다.
“내 똑똑하지는 못하나 나로 인하여 양절(兩浙:浙江의 옛 명칭)
지방의 여러 사원에서 선문의 종지를 알게 되었는데,경산사 주지
자리가 비어 나를 부르는 뜻은 나에게 개당설법(開堂說法)을 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