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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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요즘 총림의 도반관계와 사자관계



               호구사 동주(東州壽永)스님과 영은사 독고 붕(獨孤淳朋)스님은
            같은 고향에 동문수학한 사이로서 우의가 매우 두터웠다.동주스
            님이 호구사 주지로 있던 어느 날 때마침 성안에 있었는데 만수

            사(萬壽寺)주지 자리가 비었다고 제방의 주지가 독고스님을 그곳
            에 추천하자 하였다.당시 독고스님은 호주(湖州)천령사(天寧寺)

            의 주지로 있었으므로 (만수사의 주지가 되는 일은)단계를 밟아 승
            진하는 것이지 결코 단계를 뛰어넘는 일이 아닌데도 동주스님은
            힘을 다해 저지하였다.그러나 독고스님은 이 말을 듣고서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해가 지나 동주스님은 화주(化主)할 일이 있어 호주에 갔다.
            그는 이에 독고스님을 만나 보고 싶었지만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

            에 만나지 않았고,또한 그가 자기를 헐뜯어 모연하는 일이 실패
            로 돌아갈까 두려워하여 일부러 그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천
            령사를 찾아갔다.그러나 독고스님은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속

            히 돌아와 예를 다하여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였다.뿐만 아니라
            자신의 돈을 털어 모연을 돕고 그를 위하여 앞장서서 주선하며

            조금도 전과 다를 바 없이 편히 대하면서 옛 우정을 나누었다.동
            주스님이 호구사로 돌아온 후 깊은 밤에 방장실 치상각(致爽閣)에
            서 서성대며 스스로를 돌이켜,‘독고는 군자이고 수영(壽永)은 소

            인’이라고 하였다.
               내 요즘 총림에서 도반이라고 하는 자들을 살펴보니 말 한마디

            나 작은 잇끝으로 서로 다투며 나아가서는 서로 헐뜯고 모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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