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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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문의 종지를 밝혀 달라는 것이다.내 어찌 가난 때문에 사람들
            에게 의혹을 사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여러분이 보내 주신 물건

            들은 도로 가져가시어 나에게 ‘신화엄(新華嚴)’이라는 꾸지람을 듣
            지 않도록 해주기를 바라오.”
               시자승에게 꼭 필요한 행장만을 꾸려 그를 따르도록 명하였다.




               9.봉산 일원(鳳山一源)스님의 염고(拈古)



               나는 천력(天曆:1329~1330)연간에 호주(湖州)봉산사(鳳山

            寺)에서 일원 영(一源靈)스님을 찾아뵙고,조주스님이 오대산 노파
            를 시험했다는 화두를 참구했으나 깨치지 못했다.하루는 시봉하
            는 차에 이 화두를 들어 물으니,스님께서 말하였다.

               “내 젊은 날 태주(台州)서암사(瑞岩寺)방산(方山文寶)화상의
            문하에 있을 때 유나(維那)를 맡아보면서 나 역시 이 화두를 물었

            더니 방산화상이 말씀하시기를,‘영유나(靈維那)야,네가 한마디
            해보아라’하셨다.나는 그 당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온 누리 사
            람들이 노파를 어찌할 수 없다’고 하였더니,방산화상은 ‘나는 그

            렇게 하지 않겠다.온 누리 사람들이 조주스님을 어찌할 수 없다
            고 하겠다’하였다.나는 그 당시 마치 굶주린 사람이 밥을 얻은

            것마냥,병든 이가 땀을 흘린 것처럼 스스로 기쁨을 알았다.”
               이어서 말하였다.
               “시자야!너는 달리 한마디 해보아라.”

               나는 그 당시 인사하고 곧장 그곳을 떠나 버렸다.내 기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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