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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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암잡록 上 47
는 것이다.그와 같은 이들이 이제 우리 무리 속에 뒤섞여 있고
관리는 한가롭게 관아 위에 앉아 동양스님을 취조하려 드니,이
일을 내 어떻게 감당하겠느냐”하고서 곧장 남당사(南堂寺)로 물
러가 버렸다.
초석(楚石)스님이 가흥(嘉興)천령사(天寧寺)에 주지로 있을 때
였다.마침 관리가 관청을 중건하려는데 재목과 돌이 부족하여 스
님들이 살지 않는 마을의 폐사(廢寺)를 헐어 필요한 물자를 충당
하고자 여러 사원의 주지들과 의논하였다.당시 초석스님은 안 된
다고 힘껏 말렸으나 관리가 받아들이지 않자 드디어 사퇴의 북을
두드리고 해염(海塩)천령사(天寧寺)로 돌아와 버렸다.
두 노스님은 모두 과감히 의리를 행하고자 높은 주지의 지위를
마치 헌신짝보다도 더 가볍게 버렸다.그러나 오늘날엔 자신이 화
를 당하면서도 지위에 연연하여 차마 버리지를 못하니 이를 어찌
하랴.
14.동상종(洞上宗)을 지키고 전하다/운외(雲外)스님
운외(雲外)스님은 창국(昌國)사람이다.몸은 왜소하게 태어났으
나 정신만은 남달랐다.설법할 때는 정확한 비유와 방증을 들었
고,자신을 굽혀 배우려 하는 자들을 귀하게 여겨 자상하게 성취
시켜 주었다.그러면서도 맹렬히 달려나가 뒤따라올 수 없는 경지
에 이르러서는 매의 눈초리와 용의 눈동자를 지닌 자라 하여도
그를 엿보지 못하였으며,동상종(洞上宗)은 그의 힘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