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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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에 올라 축향(祝香)을 끝낸 뒤 옷깃을 여미고 자리에 앉으니,화
두를 묻는 선승들이 끝이 없었으나 죽장스님은 물 흐르듯 막힘없
이 답했을 뿐 아니라 그 말로 되물으니,그들 스스로 물러나 패배
를 자인하게 되었다.이처럼 너덧 사람을 꺾는 동안 관리들은 오
래 서 있는 데 싫증을 느낀 나머지 화두를 물으러 나오지 못하도
록 중지시켰다.드디어 스님은,마치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우레
가 진동하듯,번갯불이 번쩍이고 별똥이 튀듯 종지와 화두를 들어
설법하니 사람들은 모두 기가 질렸으나 그만은 오히려 여유가 있
었다.설령 그를 미워하던 자에게 천만 개의 혓바닥이 있었다 하
여도 스님을 찬양하는 사람을 이기지는 못했을 것이다.그러나 애
석하게도 장수를 누리지 못했으니,총림에 복되는 일이 아니다.
17.축원(竺元)스님의 가르침을 받고/신 고범(新古帆)스님
황암(黃岩)영석사(靈石寺)의 신 고범(新古帆)스님은 초년에 호
구사의 동주(東州)스님을 찾아뵈었는데 동주스님은 그에게 장경각
열쇠를 맡긴 적이 있었다.그 다음 홍복사(鴻福寺)의 축원(竺元妙
道)스님을 찾아뵙고,어느 날 저녁 방장실에 올라가 자세한 가르
침을 청하였다.
“저는,개에게는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는 화두를 들고 있으
나 들어갈 곳이 없으니,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축원스님이 호된 목소리로 꾸짖었다.
“밤이 깊었으니 물러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