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5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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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암잡록 上 85


                 서풍을 등에 맞고 까마귀 수를 헤아려 본다.
                 浮世光陰自不多 題詩聊復答年華
                 今朝我在長松下 背立西風數亂鴉




               47.청소하는 눈먼 수좌/나한사(羅漢寺)증(證)수좌



               안산(雁山)나한사(羅漢寺)의 증(證)수좌는 눈은 멀었지만 도안
            (道眼)은 명백하였다.그는 아침마다 마당 쓰는 것으로 불사를 삼

            았는데 한 스님이 물었다.
               “이 한 조각 땅뙈기를 말끔히 쓸었는가?”

               증수좌가 빗자루를 세워 보였다.또 다른 스님이 물었다.
               “진짜 깨끗한 곳은 본디 한 점 티끌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청
            소를 하는가?”

               또다시 증수좌는 빗자루를 세워 보였다.
               요청(樂淸)지방에 구우산(九牛山)이라는 산이 있는데 증수좌는

            이 산에 대하여 게송을 읊었다.


                 너덧 봉우리 무리를 이룬 지 몇 해던고
                 봄 가을 겪어 오며 바람과 아지랑이로 배불렸네
                 맑은 연못물을 언제 한번 마셔 볼까

                 푸른 들판 갈지 않은 채 긴 잠에 취해 있네

                 낱낱의 발꿈치를 모두 땅에 붙이고서
                 하나하나 콧구멍은 먼 하늘에 솟아 있네
                 보통 천봉의 정상에 서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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