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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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着語)를 부탁하자 귀원스님이 말하였다.
“총림에서는 그가 세상에 나와 설법하지 않았던 점을 유감으로
여기지만 이제 이 세 수의 게송을 읽어보니 마치 큰 범종을 한 번
치면 모든 소리들이 사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이다.어찌 그가 설
법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이 게송이 오랜 세월이 지
나다 보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때문에 눈에 보이는 대로 몇 수를 기록해 본다.
전등록 읽다 보니 구레나룻 먼저 희고
애써 공부 다퉈 온 지 몇 낙차(洛叉:십만 년)인고
낮잠 자다 깨어 보니 책상 위엔 먼지만이 가득한데
처마 끝에 반쯤 드는 한가한 햇살 아래 뜨락의 꽃이 지네.
傳燈讀罷鬂先華 功業猶爭幾洛叉
午睡起來塵滿案 半檐閑日落庭華
뾰족한 지붕 낮게 고치지도 않고
위에는 긴 숲이 있고 아래엔 연못 있으니
깊은 밤 놀란 바람 노란 잎새 휘날려
오히려 쑥대밭에 내리는 빗소리 같아라.
尖頭屋子不敎底 上有長林下有池
夜久驚猋掠黃葉 却如蓬底雨來時
덧없는 세상,세월 얼마 남지 않아
애오라지 시를 쓰며 또 세월을 달래 본다
오늘 아침 소나무 아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