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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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말을 한 다음 법문을 하였다.
               “수좌는 선배 스님들에 비해 칭찬할 만하지 못하고 서기가 하

            는 법문은 마치 인물을 그릴 때 모든 것을 다 그려 놓고 눈동자를
            찍지 않은 격이며 장주가 하는 법문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
            다.이러고서도 뒷날 나는 노승의 법회에서 소임을 보다가 왔노라

            하겠지!”
               그는 불법 주관하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하여 조금이라
            도 불법을 손상한다거나 후학을 오도하는 일을 용납하지 않았는

            데,비록 말로는 그들을 눌렀으나 실제로는 그들을 일으켜 주었
            다.오늘날 불법을 주관하는 자들은 자신의 안목은 밝지 못하면서
            사탕발림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사는 데 힘쓰고 그들이 감동하여

            법제자가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아!만일 단교스님이 이런 속
            된 짓을 보았더라면 어찌 침을 뱉고 욕을 하는 데 그쳤겠는가.





               55.아들 둘 낳고 출가하여 도를 이루다/희길상(喜吉祥)


               진강(鎭江)보조사(普照寺)의 희길상(喜吉祥)*은 산동 사람으로
                                                       7)
            피부가 새까맣고 깡말라 인도 승려와 비슷하였다.젊은 나이에 부
            모에게 출가하겠다고 말씀드리자 부모는 후손을 잇지 못하는 죄

            크다 하여 허락하지 않았다.이 때문에 부인을 맞이하여 두 아들
            을 낳은 뒤에야 승려가 되어 유식업(唯識業)을 주로 익혔다.지원
            (至元)25년(1294)에 설선황제(薛禪皇帝:元 世祖)는 강회(江淮)지


            *원사 석로전(元史 釋老傳)에는 엄길상(嚴吉祥)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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