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6 - 선림고경총서 - 30 - 원오심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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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그냥 지나쳐 버린 적이 없다.반드시 서로 거론하여 비교
해 주고 서로 갈고 닦아 주더니,신풍산(新豊山)에서 깊숙이 계합
하여 활연히 종지를 깨달은 것이다.
덕교(德嶠:덕산)스님은,그의 걸음걸이와 체재를 보건대,불법
문중의 용과 코끼리라고 할 만하다.후학들은 그들의 자취를 우러
러,세월을 헛되게 보내 옛날의 훌륭했던 어른들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옛날에 천태 소(天台德韶)국사는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났다.
총림을 행각할 때 가는 곳마다 기연이 맞아서 스승 대접을 받게
되었다.그러다가 나중에는 금릉(金陵)땅 청량사 대법안(大法眼)
스님의 회상에 가게 되었다.그곳에서 묻고 참례하는 것은 게을리
하고 오직 열심히 시봉을 들며 방장실에서 옷깃을 여미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루는 대중 참당(參堂)에 따라갔는데,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계근원의 한 방울 물입니까?”
그러자 “이것이 조계근원의 한 방울 물이다”라고 대답하는 말
을 듣고,전에 깨닫고 이해했던 것이 마치 얼음 녹듯 풀려 큰 안
온함을 얻었다.이로써 배워서 이해하는 것은 사람을 피곤케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마디,한 구절,한 기틀과 한 경계에서 아는 것은 다문(多聞)
을 더할 뿐이니,궁극의 지극한 실제 자리에 이르려면 모름지기
통 밑바닥이 빠져 버리듯 해야만 하리라.이 일은 결코 말 가운데
있질 않다.이를 집착하고 기억하여 자기의 견해로 삼는다면 마치
그림 속의 떡과 같으니,어떻게 배고픔을 달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