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선림고경총서 - 30 - 원오심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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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심요 上 121


               43.추선인(樞禪人)에게 주는 글



               현묘함을 배우는 사람이 본성을 보고 이치를 깨달아 부처의 계
            단을 밟는 것은 일상의 다반사이다.모름지기 불조의 정수리 위에
            환골탈태시킬 만한 오묘한 이치가 있는 줄을 알아야만 격식과 종

            지를 초월하여 향상인의 행동거지를 행하며,덕산스님과 임제스님
            이라도 작용을 베풀 곳이 없게 한다.평소에 무심한 경지만을 지

            킬 뿐이니,애초부터 재주를 부리지 않아 흡사 무식한 촌사람 같
            다.그렇기만 하면 바로 모든 하늘이 꽃을 바치려 해도 길이 없고
            마군 외도가 가만히 엿보려 해도 볼 수가 없다.넓고도 넓어서 털

            끝만큼의 모서리도 노출되지 않으며,마치 억만의 보배더미 속에
            있으면서 굳게 닫힌 듯하다.또한 얼굴에는 흙 바르고 머리에는
            재 쓰면서,미천한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살면서 입으로는 말하지

            않고 마음으로는 생각하지 않아,세상 사람들이 헤아릴 수는 없으
            나 신의(神意)는 태연하였다.이것이 어찌 도가 있어 함이 없고 조
            작 없는,진정으로 하릴없는 사람이 아니랴!

               말을 이해하는 것은 혀에 달려 있지 않고 말을 잘하는 것은 언
            사에 있지 않으니,옛사람이 혀끝으로 한 말은 의지할 곳이 못 된

            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그러니 옛사람이 한두 마디 한 것
            은 그 의도가 사람들로 하여금 곧바로 본래의 일대사인연을 깨닫
            게 하려는 데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의 가르침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
            하고 조사의 말씀은 문을 두드리는 기왓조각인 것이다.이러한 사

            실을 알면 그대로 쉬어서 행리처가 면밀하고 수용처가 관통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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