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선림고경총서 - 30 - 원오심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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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4.원수좌(圓首座)에게 주는 글
도를 체득한 사람은 선 자리가 고고하고 우뚝하여 어떤 법과도
마주하지 않는다.티끌 하나 건드리지 않고 움직이니,어찌 풀 하
나 까딱 않고 숲 속에 들어가며 물결을 일으키지 않고 물에 들어
가는 정도에 그치랴.그런 가운데 속이 이미 텅 비어 고요하고 밖
으로는 대상에 응하는 작용이 끊기면 어느덧 저절로 무심을 철저
히 깨치게 되니,비록 만 가지 일이 단박에 닥쳐온다 해도 어찌
거기에 정신이 휘둘리랴.
평상시에는 마치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듯 한가함을 지키다가도
사물에 임하게 되어서는 애초에 재주를 부리지 않는다.헤아리고
결단함이 바람이 돌고 번개가 구르듯 기연에 딱딱 들어맞으니,어
찌 본래 지켜 온 것이 아니겠느냐.
옛 스님이 말하기를,“사람이 활쏘기를 배울 때,오래도록 쏘아
야만 비로소 적중시키는 것과도 같다”고 하였다.깨닫는 것은 찰
나이나 공부를 실천해 가는 데는 모름지기 긴 시간을 요한다.마
치 비둘기 새끼가 태어나서는 붉은 뼈가 허약하지만,오랫동안
먹이를 주고 길러서 깃털이 다 나면 문득 높고 멀리 날 줄 아는
것과도 같다.그러므로 투철하게 깨닫는 요점은 바로 다스림[調伏]
*노마지지(老馬之智):제(齊)나라 환공(桓公)이 길을 잃고 헤맬 때 관중(管仲)이 늙
은 말을 풀어놓고 뒤를 따라가 길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