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선림고경총서 - 30 - 원오심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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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종사가 학인을 위해서 정형화된 격식[窠臼]이나 어떤
표방[露布]을 내걸지 않더라도 오래 가면 배우는 무리들이 잘못
알아 기어코 격식과 표방을 만든다.더욱이 그들은 격식 없음으로
격식을 삼고,표방 없음으로 표방을 만든다.모름지기 여기에 이
르러서는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리고 손가락을 달로 착각
하는 그런 일들을 모두 없애야 하리라.
기미보다 앞서서 비춰 보고 먼지바람에 움직이는 풀에서도 그
단서를 알아차려야 하는데,더구나 시끄럽게 세상살이를 하는 경
우이겠느냐.가슴이 텅 비고 고요하여 아무것도 헤아릴 것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떻게 기미보다 먼저 사물을 알아차리고 착오
없이 원만하게 응대할 수 있겠는가.이는 모두가 나가선정(那伽禪
定:부처님의 선정)의 효험이다.
임제스님의 금강왕보검,덕산스님의 말후구(末後句),약교(藥嶠)
스님의 한마디,비마(秘魔)스님의 나무집게,구지(俱胝)스님의 손가
락[指],그리고 설봉(雪峰)스님이 공을 굴렸던 일과 화산(禾山)스님
이 “북 칠 줄 아느냐”했던 것과 조주(趙州)스님이 “차나 마시게”
했던 것과 양기(楊岐)스님의 밤숭어리[栗棘蓬],금강울타리[金剛圈]
등이 모두 같은 이치일 뿐이다.깨치면 그대로 힘을 덜어 모든 불
조의 말씀을 다 통달할 것이니,오직 당사자 스스로 두루 널리 지
니는 데 달려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