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선림고경총서 - 30 - 원오심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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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심요 上 57
함을 전수받아 조사의 법등을 계승할 수 있었습니다.알음알이가
끊겨 사유를 벗어나고 정식(情識)을 뛰어넘어 호호탕탕하게 통하
여 자유자재한 곳에 도달하였습니다.사람을 택하여 법을 부촉할
경우에 이르러서는 남다른 기상은 물론 모습이나 체제가 완전히
갖추어지기를 요구합니다.그런 뒤에야 집안의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위로부터 내려오는 수단을 체득하여야 바야흐로 서로가 부
합한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수백 년을 계속 이어 오면서 갈수
록 더욱 빛이 났으니,이른바 근원이 깊어야 멀리까지 흐른다고
한 것입니다.
요즈음은 자못 옛날의 자취를 잃어 가풍을 함부로 하며 주장들
을 남기고 격식을 만듭니다.스스로가 완전히 벗어나질 못하고서
도리어 남들을 위한다면,이것은 마치 늙은 쥐가 소 뿔에 들어가
는 것과 같아서 점점 갈수록 좁아집니다.이러고서야 어떻게 위대
한 강령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날 처음 스승[五祖法演]을 뵈었을 때 내가 공부한 바를 털
어놓았는데,그것은 모두 보고 들은 기연의 어구들로서 모두 불법
과 심성의 현묘함에 대해서였습니다.그러자 노스님께서는 무미건
조한 두 구절을 들려주셨는데,“유구(有句)와 무구(無句)는 마치 등
덩굴이 나무를 의지한 것과 같다”였습니다.처음에는 이리저리 재
주를 부려 보았고,다음으로는 논리를 세워 설명하였으며,끝에
가서는 해보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꺼내는 족족 간략히 물리치
셨으니,이윽고 나도 모르는 결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그러나
끝내 들어갈 수가 없어 재삼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하였더니 법어
를 내려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