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2 - 선림고경총서 - 31 - 원오심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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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 사람이지,부질없이 얘기 밑천이나 삼는 들뜬 근기나 그저 말
만 숭상하는 천박한 학자가 아니십니다.더구나 하나의 큰 인연은
사람마다의 근본이지 않습니까.그것은 훤칠하게 융통하여 뭇 현
상을 포괄하고 멸하지도 나지도 않으면서,고금에 뻗쳐 항상 일용
하는 가운데 있습니다.그러나 시작 없는 망상과 습기에 가리어
억지로 알음알이를 짓기 때문에 오롯이 벗어나지 못할 뿐입니다.
총명하신 공께서는 지금 이미 마음을 쉬고 힘을 다해 참구하
여,모든 허망한 인연을 떠나 여여한 성품을 아셨으며,‘모든 모습
이 모습 아님’을 보려 하십니다.만약 확연하게 한결같이 오래도
록 공부를 하시면 결정코 깨닫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마치 저 부
처님이 “모든 모습이 모습 아님을 본다면 바로 여래를 보리라”한
말씀대로 모든 모습의 당체는 끝내 얻을 수가 없습니다.전적으로
자기의 마음으로서 ‘모습 아님’이 됩니다.
즉 여여하게 왔다가 여여하게 가면서 둘도 없고 다름도 없습니
다.온 전체가 그대로 참이라 본래 청정한 묘명진심에 계합하나
다만 자기의 본래면목일 뿐입니다.굳이 사람들에게 모든 모습을
버리고 ‘모습 아님’을 위하여 밖에서 이리저리 찾게 한 것은 아닙
니다.그러나 이 마음은 본래 맑고 고요하여 사물과 내가 한결같
이 여여하며 경계와 마음은 애초에 두 종류가 없습니다.
요컨대 마음이 그윽하고 경계가 고요해야 그런 뒤에 깨달아 들
어갈 수가 있습니다.깨달아 들어가고 나서는 깨달음도 깨달음이
아니며 들어감도 들어감이 아니어서,마치 통 밑이 빠지듯 단박에
꿰뚫어야 비로소 남이 없고 함이 없으며 몹시 한가로워 현묘한
도의 바른 당체에 계합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