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선림고경총서 - 31 - 원오심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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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심요 下 121
말고 다른 길이 없습니다.이 마음은 그저 고요하고 깊어 성인이
니 범부니 하는 계급을 벗어났습니다.그래서 무엇보다 지혜로운
상근기가 갖가지로 얽힌 무명의 굴에서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
고 단박에 계합함을 귀하게 여길 뿐입니다.
확연히 사무치고 영명(靈明)하여,유정(有情)이나 무정(無情)이
나 유성(有性)이거나 무성(無性)이거나에 상관없이 한 몸이어서 큰
법과 서로 호응하여 작용을 일으킵니다.고금을 꿰뚫고 초월하며
소리를 누르고 물색을 덮어,텅 비었으면서도 신령하고 고요하면
서도 환하게 비춥니다.한량없고 장애 없는 불가사의한 큰 해탈이
낱낱이 종횡으로 뚫려 서로 전혀 관계할 바 없이 곧바로 귀결점
을 압니다.그 때문에 옛 불조께서 이를 외길로 전하고 가만히 분
부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도장을 허공에 찍는 듯도 하고 도장을 진흙에 찍는
듯도 하고 도장을 물에 찍는 듯도 합니다.모든 덕이 환하여 시방
을 눌러앉아 홀로 초연히 깨치니 애초부터 아무것에도 의지함이
없습니다.가령 견해를 일으켜 형상을 짓는다면 벌써 빗나가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어집니다.
요즈음 시대에도 크게 종성(種性)을 갖춘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허깨비 같은 인연과 경계를 타파하고 용맹하게 분발하여
이쪽으로 옵니다.그런가 하면 오랫동안 마음을 두어 깊숙이 탐구
하는 자가 있긴 합니다만,그러나 방편의 힘이 부족하여 지견의
알음알이로써 명료함을 삼는 데 그치고 마니 걱정입니다.그러나
이는 앉아 있는 놈 전체가 식심(識心)일 뿐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
랐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