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7 - 선림고경총서 - 31 - 원오심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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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심요 下 137
를 믿지만 말고,다만 말하라.“나는 그대를 안다”고.괴롭고도 괴
롭도다.단박에 해치울진저.산승은 일없는 경계 속에서 이 년 남
짓 살았지만 가슴속이 끝내 분명하지 못했다가,그 뒤 갑자기 백
운(白雲)에 있으면서 통 밑이 빠지듯 하였다.그제서야 바야흐로
이 망정과 견해가 모든 사람을 죽이고 엉뚱한 사람들을 산채로
결박했음을 확연히 보게 되었다.일없는 경계 속에서 가슴속이 마
치 검은 칠통과도 같이 오로지 무명의 업식(業識)을 길렀던 것이
다.명예를 탐내고 이익을 취하여 지옥업을 지으면서 스스로 “나
는 이미 아무 일도 없다”고 하였다.
운문스님의 의도를 자세히 살펴보건대 어찌 이러했을 뿐이랴.
이로써 맛좋은 제호도 이런 사람을 만나면 독약이 된다는 점을
알겠다.진실로 운문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어찌 이처럼 죽이려 하
겠느냐.그가 제창한 경계는 모두 불조의 대기대용으로 드러내 보
여준 것이다.그리하여 손으로 획을 그으며 “불전이 무엇 때문에
이 속에서 가느냐”고 하였으니,모든 성인도 모름지기 뒤로 물러
나야 하고,큰 해탈지견을 갖춘 이라도 모름지기 숨을 마시고 소
리를 삼켜야만 한다.산승이 부득이하여 겨우 약간만 보여주었으
니 아는 자만이 알 뿐이다.
참학을 하려면 꼭 실답게 참구해야 한다.시비를 끊고,득실을
떠나며,티끌 번뇌를 버리고 지견을 벗어난 데 이른 뒤에야 이런
부류에 들어갈 수 있다.참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