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선림고경총서 - 31 - 원오심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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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은 아닙니다.”
“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앙산스님은 땅 위에 일원상을 그리고 일자(日字)를 쓰더니 발
로 문질러 버리고 가버렸습니다.
체득한 사람들이 나아간 자취를 보십시오.어찌 고정된 틀을
지켰겠습니까.여기에서 그 변화를 잘 관찰한다면 그 마음을 완전
히 살필 수 있습니다.그 마음을 살피고 나면 자유로운 곳이 있으
며,자유로움이 있고 나면 다른 것에 끄달리지 않습니다.다른 것
에 끄달리지 않고 나면 어디를 간들 마음대로 되지 않겠습니까!
사대부를 만나 보면 대개들 “세속의 일에 얽혀 그렇게 할 겨를
이 없습니다.세속의 일을 차츰차츰 정리하고 나서 마음먹고 참구
해 보겠습니다”라고들 합니다.좋은 말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기왕
세속 일에 오래 있어 왔으니,번뇌로써 수행으로 삼으면 됩니다.
번뇌가 출몰할 때 쓸모 없는 물건처럼 태워 버리고 그것을 그저
‘세속의 일’이라 부른다면,어찌 다시 세속의 인연을 버려야 깨달
아 들어갈 곳이 있다 하겠습니까.
이른바 “종일 행해도 일찍이 행한 적이 없고,종일 쓰면서도
일찍이 쓴 적이 없다”한 것입니다.어찌 번뇌 밖에 따로 이 큰
인연이 있겠습니까.큰 보배더미 위에서 큰 보배 광명을 놓아 천
지를 빛낸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서,스스로 깨달아 알아차리지 않
고 다시 밖에 나가 구하느라고 더더욱 고생만 하니,어찌 지극한
요점이라 하겠습니까.큰 근기를 갖추었다면 옛 분들의 말씀이나
공안을 들 필요가 없습니다.단지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여 가리키고 부르는 등 모든 행위를 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