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 - 선림고경총서 - 31 - 원오심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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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으니,일 생기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득이하여 사람들에게 붙들려 나오게 되어도 굳이 사양

            하지 않았으니,아마도 무심했기 때문일 것이다.자비를 내려 방
            편을 베풀게 되더라도 그저 다만 풍성하면 풍성한 대로 검소하면
            검소한 대로 가풍을 따랐을 뿐이다.

               구지(俱胝)스님은 한 손가락을 세웠을 뿐이며,타지(打地)스님은
            땅을 쳤을 뿐이고,비마(秘魔)스님은 나무집게를 들었으며,무업(無
            業)스님은 ‘망상 피우지 말라’고 하였고,항마(降魔)스님은 홀(笏)을

            들고 춤을 추었다.그들은 애초부터 격식과 승부라는 견해에 구애
            받지 않고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 쉼으로 돌아갈 것을 알아서 견
            해의 가시를 일으키지 않도록 힘썼던 것이다.귀신의 소굴에서 정

            혼(精魂)을 놀리지 말고 우뚝하고 정성스러이 몹시 안온한 경지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오묘한 종지인 것이다.

               영리한 자라면 그 자리에서 모름지기 분명한 경지를 알아 등뼈
            가 무쇠처럼 단단해야 한다.인간 세상에 노닐더라도 모든 인연을
            허깨비로 보아서 잡는 것마다 주인이 되라.인정을 따르지 말며

            나다 남이다 하는 생각을 끊고 알음알이를 벗어 대뜸 견성성불하
            여 묘한 마음을 곧바로 가리키는 것으로 계단을 삼아야 한다.작

            용하며 인연에 응하게 되어서는 형식에 떨어지지 말고 ‘한 덩어리’
            를 오래도록 가져서 고요하고 담박한 몸과 마음을 영원토록 지키
            면서 티끌 번뇌에서 투철히 벗어나야만 훌륭하고도 훌륭한 자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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