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선림고경총서 - 31 - 원오심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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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것과 구지(俱胝)스님이 한 손가락을 치켜세웠던 경우는 모두
근원을 곧바로 깨달아 결코 기댐이 없었다.지견의 장애를 훌쩍
벗어나 깨끗하니 더럽느니 하는 상대적인 견해에 걸리지 않고 위
없는 진실한 종지를 초월 증오하여,함이 없고 조작이 없는 경계
를 밟았던 것이다.
요즈음 도를 배우는 이가 이미 지향하는 목적이 있다면 마땅히
힘써 옛사람과 짝이 되어 마음 깨칠 것을 기약해야만 한다.참된
경지를 밟게 되면 하는 것마다 모두 근본자리로 돌아가 모든 성
인도 그를 가두지 못하며,알음알이가 다 없어지고 잘잘못을 모두
벗어난다.바로 이것이 하고자 함도 없고 의지함도 없는 진정 자
유자재한 도인이다.여기에 이르렀는데 어찌 다시 어려움과 쉬움
을 논하랴.결국 어려움 없고 쉬움 없는 그것 역시 있을 수 없다.
납승이 말 구절 속에서 몸을 벗어나는 까닭은 아마도 향상의
방편을 갖추어 말없는 속에서 말을 드러내고,몸 없는 가운데서
몸을 나타내기 때문일 것이다.말 길이 끊기고 마음 갈 곳이 끊어
져 무심하고 넓게 텅 비지만,잠깐이라도 기연이 있기만 하면 천
지를 덮는다.
이를 두고 이른바 면면밀밀하여 간격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자유자재한 경지에서 이와 같다.
이 때문에 모든 하늘이 꽃을 바치려 해도 길이 없고 마군 외도가
가만히 엿보려 해도 볼 수가 없으니,이처럼 실천해야 자연히 모
든 삼매를 초월한다고 할 만하다.
옛사람이 무위무사로 극치를 삼은 것은 아마도 그 마음 근원이
맑고 텅 비어 융통하고 실제로 이 경계를 밟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