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선림고경총서 - 31 - 원오심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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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심요 下 93


               36.달선인(達禪人)에게 주는 글



               큰 도의 당체는 혼돈(混沌)이 아직 나뉘기 이전이나 아득하고
            황홀한 자리에 있지 않다.그렇다고 고의로 깊숙하게 은폐하여 사
            람들이 알아차리거나 헤아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아니다.지극

            한 밝음은 밝음이 아니며 지극한 오묘는 오묘가 아니니,만약 숙
            세의 근기가 완전히 익어서 고요하면 들자마자 들어 보이고 단박

            에 귀결점을 안다.
               그리하여 다시는 밖으로 치달려 찾지 않고 바로 자신의 발밑에
            서 백 가지를 맞추고 천 가지를 알아차려 완전한 당체를 그대로

            이룬다.나아가 경계에 부딪히고 외연을 만나더라도 모조리 처음
            부터 끝까지 사무쳐 눌러앉고 꽉 쥐고 주인이 되어,끝내 다른 사
            람의 혀끝에서 나온 주장이나 고금의 가르침,기연․경계의 공안

            을 가지고 철칙으로 삼지 않는다.그러므로 예로부터 작가선지식
            은 오직 이것을 들고서 사람들에게 스스로 알아차려 걸머지도록
            하였을 뿐이다.어찌 다시 단계나 지위 점차 등을 세운 적이 있겠

            는가.
               이런 경우가 닥쳐온다 하더라도 요즈음 형제들이 전적으로 마

            음을 쓰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않겠으나,요는 힘을 덜지 못했다는
            것이다.큰 근본․큰 그릇․큰 기틀․큰 작용을 갖추어 하나를
            들으면 천을 깨쳐서 골수에 사무쳐 통렬하게 깨달아 지녀야 한다.

            털끝만큼이라도 한 번 빗나가기만 하면 그대로 알음알이의 길인
            언전의식(言詮意識)의 6근․6진으로 들어간다.그 때문에 저 방편

            의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없이 의심 품는 것을 면치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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