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2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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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뜻 보기에 위산은 늘그막에 이른 이 같고,앙산은 아랫사
                람이라 자손인 듯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어떤 승이 장사
                잠대충(長沙岑大蟲)에게 묻되 “본래의 사람[本來人]도 부처를
                이룹니까?”하니,장사(長沙)가 대답하되 “그대는 대당(大唐)의
                천자가 띠나 풀을 깎으리라 하느냐?”하였으니,이것으로 보건
                대 띠를 깎는 것은 신하와 아들 쪽의 일임을 알겠다.

                  “지금껏 가문만 일으킨 것을 부끄러이 여긴다”니 천 년의 그
                림자 없는 나무가 지금의 밑바닥 없는 신발이요,주지(住持)의
                살림은 천 봉우리의 달이요,의발(衣鉢)은 한 개울의 구름이라.
                이는 모두가 힘을 얻은 자손들이 가업(家業)을 이어나가는 모
                습이다.이로써 알라.군신과 부자는 조동종(曹洞宗)에서 처음
                세운 것이 아니라 위산과 앙산 부자가 이미 이 정령을 시행했
                었다.
                  만일 위산이 점검해서 간파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그림자

                의 문턱에서 죽이나 밥의 냄새를 희롱하면서 말구 중의 행세
                [驢前馬後]로 평생사업이라 여겼을 것이니 심히 애석한 일이로
                다.그러기에 천동이 “남산의 띠 베는 사람”이라는 한 토막의
                이야기를 기억해서 뼈와 살에 새겨 두고 은혜 갚기를 다함이
                없게 한 것이다.법등(法燈)이 이르되 “농부가 땔나무를 짊어지
                고 돌아와서/지어미를 재촉하여 밤을 새워 길쌈을 짜도다/그
                집안 살림 바쁜 것을 보건대/일러 보라.누구의 힘을 이어받았

                겠는가?/그에게 물어도 그가 알지 못하여/공연히 의혹을 내도
                다/애달프구나!고금의 사람들이 몇이나 은덕을 알런가?/안
                뒤에는 어찌했던고?/팔을 끊어도 아픈 줄 모르고/눈 위에 섰
                으되 피로한 줄 모르도다”하였다.그러기에 만송도 노년에는
                보은원(報恩院)에 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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