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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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上 127
그대가 나에게 묻기를 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도 허물이
있는가,허물이 없는가 한다면 나는 문득 한 무더기의 수미산
을 꺼내어 그대 앞에다 놓는 시늉을 하겠으니 그 법보시의 이
로움은 진실로 인색함이 아닐 것이다.영가(永嘉)도 이르되 “크
게 보시하는 문이 활짝 열려 옹색함이 없다”하였으니,오늘만
의 일은 아니다.
범어의 수미(須彌)는 묘고(妙高)라 번역한다.네 가지 보배로
이루어졌기에 묘(妙)라 하고,뭇 봉우리 위에 우뚝하기 때문에
고(高)라 하나니,네 천하[四天下]의 산에서 수미산이 가장 높
다.그대가 만일 스스로 긍정한다면 내가 문득 두 손을 활짝
펴서 내줄 것이다.
옛 시에 이르되 “그대 마음에 긍정되는 곳이라야 내 목숨이
트이는 때리라”하였거니와,사실 이 일은 항상 드러났음이 마
치 수미산이 우뚝우뚝한 것 같거늘 뉘라서 가리거나 갈무리할
자가 있겠는가?전해 주기 전인들 어찌 그대에게 분복[分]이
없을 것이며,전해 준 뒤인들 어찌 새로이 얻어진 것이겠는가?
듣지 못했는가?장경(長慶)이 이르되 “만상(萬象)가운데 홀
로 드러난 몸이여,그대 스스로가 긍정해야 비로소 가까이할
수 있다”하였는데 천동이 여기에 이르러서는 대단히 함축성
있는 공부를 보였다.그런데 그대가 만일 망설이면서 가까이
오지 않는다면 천리 만리에서 우러러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거원(璩源)이 이르되 “이 일은 마침 무너져 내리는 듯,갈기
갈기 터지는 듯한 바위가 천 길 절벽과도 같아서 손을 댈 수가
없다.그러나 그대가 일찍이 나를 여의지도 않았고,나 또한 일
찍이 빼앗지도 않았다”하였으니,이 구절은 위 구절과 비교하
면 미혹과 깨달음이 서로 반대되어 짝을 이룸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