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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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上 133


               짧건 길건 맡겨 두어 재단질을 말 것이요
               -헛수고를 했구나!
               높건 낮건 인연 따라 스스로 평평해지게 하라.

               -몸과 마음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없구나.
               가문(家門)의 풍요와 검소는 형편에 따르고
               -염초(鹽醋)야 빠질 수 없을 터이지.

               고향길[田地]을 거닐음에는 발걸음에 맡긴다.
               -다니고 싶으면 곧 다닌다.
               30년 전부터 행각한 일이여,

               -헤아려 생각할 길이 없다.
               분명히 한 쌍의 눈썹을 저버렸도다.
               -여전히 눈 위에 있는데.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종경(宗鏡)이 이르되 “종전에는 깨달음을 미혹해서 미혹한
                듯하였고,오늘에는 미혹을 깨달았으나 또한 깨달음이 아니다.

                그러기에 이르기를 깨닫고 나면 도리어 깨닫기 전의 사람과 같
                다는 말이 있다”하였는데,지장이 물었을 때 길 떠나는 도리
                를 알아야 하고 법안이 대답한 것 또한 겸양으로 양보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지장이 내친 김에 한마디 던지기를 “모르
                는 것이 가장 친절하다”하매 법안은 원래 모르는 그것이 도리
                어 친절한 줄을 크게 깨달은 것이다.
                  임제(臨濟)가 낙포(洛浦)에게 묻되 “어디서 오는가?”하니,낙
                포가 대답하되 “난성(欒城)에서 옵니다”하였다.임제가 다시
                묻되 “알아볼 일이 있는데 물어도 되겠는가?”하니,낙포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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