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9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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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上 139


                랴?”하였다.
                  현사가 그만둔 일에 대하여 나산(羅山)이 이르되 “딱하구나!
                두 노장이 좋고 나쁨도 가릴 줄 모르는구나!운암 노장은 손발
                을 묶인 채 죽어지낸 것이 얼마나 되던고?”하였는데,만송은
                이르노니 “덕산(德山)의 문하에서는 얻은 바가 없다고 할 수 없
                겠으나 동산(洞山)의 문하에서는 아직 멀었다”하노라.

                  설봉이 행각할 때에 투자(投子)에게 세 번 갔고,동산에는 아
                홉 번 올라갔다.어느 날 쌀을 일고 있으니,동산이 묻되 “모래
                를 일고 쌀을 버리는가,쌀을 일고 모래를 버리는가?”하니,설
                봉이 대답하되 “쌀과 모래를 동시에 버립니다”하였다.동산이
                다시 묻되 “대중은 무엇을 먹느냐?”하니,설봉이 동이를 엎어
                버리매,동산이 이르되 “되기는 되었으나 다른 사람을 만나야
                되겠다”하였는데 나중에 과연 덕산의 법을 이었다.
                  현사와 장경은 모두 설봉의 법을 이었고,나산은 암두의 법

                을 이었으니,모두가 덕산의 문하에서 나온 셈이다.그러므로
                한 사람은 억누르고,한 사람은 추켜세우니,말로는 거역하되
                뜻으로는 순응한 것이다.
                  지금 운문과 동산의 두 파가 나란히 퍼지고 있으니,어찌 우
                열이 있으리오마는 운문이 이르되 “남종이 여종을 보면 정성스
                러워진다”한 일에 대하여,보복(保福)이 이르되 “운암은 마치
                진흙 구덩이에 수레를 미는 것 같아서 걸음마다 바쁘다”하였

                다.두 노숙(老宿)은 다 같이 설봉의 법을 이은지라 자연히 말
                과 의기가 서로 통해서 생각하기를 “운암은 빗자루로 쓸어버리
                듯 시비를 끊어 버리지 못할 것이라”여겼으니 묽은 진흙탕 속
                에 가시가 들었을 줄이야 전혀 모른 것이다.
                  만송은 그들의 주장[拈提]을 훑어보다가 채 끝나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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