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1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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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上 161
-부채는 아직 있는데 있어도 없는 것 같다.
자복(資福)이 일원상(一圓相)을 그리고 그 중심에다 우(牛)자 하
나를 썼다.
-뛰어나게 교묘한 신출내기 행자가 능히 꾸며서 장사를 할 줄 아는구
나!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항주(杭州)염관현(鹽官縣)진국(鎭國)땅 해창원(海昌院)의 제
안(齊安)선사는 본시 당(唐)나라 황실의 종친이다.
선종(宣宗)이 숨어 있을 때,승(僧)이 되어 선사를 뵈려고 하
였다.선사는 이 일을 미리 알고 주사(主事)에게 잡된 말을 일
체 금하고 잡된 일을 모두 그치도록 당부했다.선종이 오랜 동
안 머물렀다가 갑자기 하직을 고하니,선사께서 은밀히 이르되
“때가 왔으니 초토[泥蹯]에 묻혀 계시지 마소서”하고 겸하여
불법의 장래를 부탁하였다.무종(武宗)이 불교를 탄압한 지 6년
에 선종을 부흥시키는 데 선사의 공이 컸다.황제(선종)가 선사
를 궁중으로 초빙하여 오래도록 공양하려 했으나 선사는 이미
입적한 지 오래였다.황제가 슬피 여겨 시호를 오공선사(悟空
禪師)라 하였다.
선사가 어느 날 시자를 불러서 “내게 무소뿔 부채를 건네 달
라”하니,시자가 대답하되 “부채가 부서졌습니다”고 대답하였
는데,이는 평범한 실제 부자의 대화였다.선사께서 다시 이르
되 “부채가 이미 부서졌으면 무소라도 돌려다오”하였으니 이
는 온몸을 풀숲에 던지면서 자식을 기르는 사연[緣]이요,시자
가 대답이 없는 것은 도리어 삿됨을 인하여 바름을 찾는 격이
거늘 단지 그런 줄을 알지 못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