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8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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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에 자라고 했는가?”하였다.이 화두는 비록 현묘한 점
은 없으나 깨우쳐 줌이 매우 많으니,한 모퉁이를 들매 세 모
퉁이를 볼 수 있다
동산(洞山)의 현중명(玄中銘)에 이르되 “봉우리들이 수려하나,
학이 날개를 멈추지 않고/신령한 나무가 끝없으나 봉황이 의
지할 곳은 없다”하였는데,그 승이 문득 묻되 “학이 외로운
소나무에 앉았을 때는 어떠한가?”하였으니 그 승은 공부하는
경지에 어리석게 앉아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렇게 섬세한 본지풍광(本地風光)을 가지고 이마에 붙
이고,만나는 사람마다에게 내놓는다면 이는 ‘외롭고 우뚝한
데에도 서지 않아야 도가 비로소 원만해진다’는 도리를 전혀
모르는 꼴이니 천태교(天台敎)에서 이르는,정타(頂墮:頂位에
서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호국이 이르되 “땅 밑의 것에게는 한바탕의 웃음거
리니라”하였으니,그 승이 외롭고 위태한 데서 살 계교를 하
지는 않게 되었으나 다시 얼음이 꽁꽁 얼고 눈이 굳어진 경지
로써 드러내려 했다.도 말라서 튈 듯하여도 도리어 윤기가 흐
르고,냉기가 싸늘한 곳에 도리어 온화하기를 바라는 도리를
알지 못했다.그래서 이르되 “해가 뜬 뒤에는 한바탕의 웃음거
리니라”한 것이다.그 승이 두 차례나 창칼을 휘두르고 덤볐
으나 두 차례 모두 호국의 억누름을 당했다.이미 어쩔 수 없
기에 이르자 다시 교문(敎門)의 흥폐(興廢)에 따른 의문을 들어
서 묻되 “회창 사태 때,호법선신(護法善神)은 어디로 갔었습니
까”한 것이다.
당나라 무종(武宗)은 선도(仙道)를 좋아하여 승니(僧尼)26만
5백 사람을 도태하였고,회창(會昌)5년 8월 하순에 모두 환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