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1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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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上 181
세워 만 리 밖에서 제후에 책봉됨이 옳을 것이거늘 어찌 오랫
동안 붓과 벼루 사이에만 종사하겠는가?”하더니,나중에 서국
(西國)을 쳐서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으니,이는 그 승의 세
차례의 물음이 탐색이 지나쳤음을 송한 것이다.
후한(後漢)의 양진(楊震)은 형주(荊州)태수의 소임을 맡았는
데 성품이 공평․청렴하여 사사로운 알현을 받지 않았다.자손
들이 나물밥을 먹고 도보로 걸어다니게 되매 집안의 어른들과
장정들이 산업(産業)을 벌리려 했으나 양진은 승낙치 않고 말
하되 “후인들로 하여금 청백리(淸白吏)의 자손이라 부르게 하
고,이것을 자손들께 물려준다면 후한 것이 아니겠는가?”하였
다.
사기(史記)에 이르되 허유(許由)는 기산(箕山)에 숨어서 산
에 의지해 먹고 개울에 가서 마시더니,요(堯)가 왕위를 이양하
겠다는 말을 듣고는 개울에 가서 귀를 씻고 있었다.때마침 소
부(巢父)가 소에게 물을 먹이러 왔다가 보고 묻되 “세상 사람들
은 얼굴을 씻는데 공만은 어째서 귀를 씻는가?”하니,허유가
대답하되 “요가 나에게 구주(九洲)의 어른이 되라는 말을 하기
에 그것을 듣고 더럽혀진 귀를 씻는 것이외다”하였다.소부가
이르되 “예장(豫章)의 나무는 높은 산에 나서 공인(工人)들이
찾지 못하거늘 그대가 세상을 피하고자 한다면 어찌하여 깊이
숨지 않는가?이제 인간에 나다니는 것은 구차스레 명예를 구
하는 것이니,그대를 대접해서 아래쪽에서 마시게 해야 할 것
이나 우리 소의 입을 더럽힐까 걱정이다”하고는 끌고 상류로
올라가서 마시게 했다고 하였다.
천동이 양진(楊震)과 허유와 소부,세 사람의 일을 들어 세
차례의 웃음거리[三忄麽忄羅]를 송하였으나 도리어 동안(同安)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