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6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P. 186

186


                두(巖頭)와 흠산(欽山)과 함께 임제를 뵈러 가는 도중에 임제가
                이미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참문치 못한 적이 있느니라”
                하고는,다시 말하되 “그대가 만일 알고자 한다면 그의 자손을
                찾아가서 물으라”하였다.풍혈이 이 일을 남원 옹(南院顒)에게
                사뢰니,남원이 이르되 “설봉은 옛 부처시니라”하였다.선사
                (풍혈)는 나중에 여주(汝州)의 풍혈산 광혜선원(廣慧禪院)에 머

                물렀는데,5대(五代)의 난도 끝날 무렵에 영주의 목주(牧主)가
                선사를 관아로 청해서 한 해 여름을 지내게 했었다.어느 날,
                목주가 법좌에 오르기를 청하매 대중 법문을 하였다.
                  “조사의 심인(心印)은 모양이 무쇠소의 바탕 같아서 돌 사람
                [石人]이나 나무 말[木馬]같지 않으니,현묘하게 제창하고 현
                묘하게 제시함이 분명 무쇠소와 같아서 그대들이 그 곁으로 가
                까이 갈 길이 없다.그대가 심인을 버린다면[去]버리자마자 갈
                고리[鉤]처럼 돌아오고 머무르게 한다면 머무르게 하자마자 백

                조각으로 부서질 것이다.그렇다면 버리지도 않고 머무르게 하
                지도 않을 때엔 도장을 찍어야 옳은가,도장을 찍지 않아야 옳
                은가?”하였으니,이야말로 낚시 끝에 미끼를 걸었다 하리로다.
                  노파장로 역시 임제 문하의 자손인지라 문득 그의 화두를
                되짚고 물었으니,기특하게도 “저에게 무쇠소의 바탕이 있습니
                다.바라건대 화상께서는 본뜨지 마소서”한 것은 무방하다 하
                겠으나 그러나 풍혈이 바른 영[正令]에 의거하여 시행하면서

                문득 이르되 “평소에 고래를 낚아서 바다를 맑히려 하였는데
                도리어 개구리가 갯벌을 저어 물을 흐리니 딱하구나!”하였으
                니 어찌하리오?

                  고래[鯨鯢]란 바다를 가로지르는 큰고기니, 장자(莊子)에
                이르기를 ‘임공자(任公子)가 50마리의 소[犗]로 먹이를 삼아서
   181   182   183   184   185   186   187   188   189   190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