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P. 28
28
천황(天皇)이 이르되 “다만 범부의 망정을 다할지언정 따로
성스러운 견해란 없느니라”하였고, 능엄경(楞嚴經) 에서는 이
르되 “만일 성스럽다는 견해를 지으면 곧 뭇 삿됨을 받으리라”
하였다.달마가 이르되 “확연히 성자가 없소이다”한 것은 번
갯빛 속에서 손으로 더듬고 눈으로 판단한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거늘 양무제는 주춤주춤[頑涎]물러설 줄 모르고 다시 묻
되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시오?”하였으니 양왕의 처지
로서는 역시 좋은 마음이었기는 하나 달마의 처지로서는 얼굴
에다 바싹 대고 침을 뱉아 준 것과 다름이 없어서 “알지 못하
겠습니다”하는 대답을 바치지 않을 수 없었음을 전혀 몰랐다.
꽃철이 이미 흘러갔는데 어찌 눈[雪]위에 서리를 더하는 꼴을
견딜 수 있었으랴?
달마는 그의 눈동자가 멀뚱멀뚱[定動]하는 것을 보자,당장
에 몸을 추슬러 딴 길로 가버렸으니 옛사람은 나서건,멈추건,
침묵하건,말하건 모두가 불사(佛事)였다.나중에 무제는 과연
일이 지난 뒤에 군자(君子)를 그리워하는 꼴이 되어 스스로가
그의 비문을 지었으니,“보고도 보지 못했고/만나고도 만나지
못했다/옛날이나 지금이나/뉘우쳐지고 한되는도다/짐은 비록
한낱 범부이지만/감히 사후[後]에라도 모시도다”하였다.
양무제가 몽진(夢塵)한 뒤,달마가 다시 서쪽으로 돌아간 이
래,이 제일의제를 아무도 들추는 이가 없었는데 다행히 천동
(天童)이 있어 대중을 위해 드러내었다.
송고
“텅 비어 성(聖)이랄 것이 없소이다”하니
-물 한 모금 마시고 딸꾹질 한 번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