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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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나왔다.
초조(初祖)가 그때 약간의 방편이 부족했으니 약이 아찔하지
않으면 그 병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
다.
시작할 때에 문득 벽력같은 수단을 썼더라면 지금엔 벌써
사사로이 묻고 따르는 일이 멈춰졌을 것이다.그래서 이르기를
“얻은 이여,코를 건드리지 않고 도끼를 휘두른다”하였다.장
자가 남의 장사[送葬]에 갔던 길에 혜자(惠子)의 묘를 지나다가
종자(從者)를 돌아보고 이르되 “영인(郢人)이 자기 코끝에다 진
흙을 파리 날개만치 발라 놓고 장석(匠石)으로 하여금 깎아 내
라 하니 장석이 도끼를 휘두르는데 윙!하고 바람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들리자 진흙이 깎이는데 눈을 감고 손 가는 대로 맡
겼으되 진흙은 몽땅 깎이고 코도 상하지 않았고 영인도 선 채
로 까딱도 하지 않았다 하였는데 부자(夫子:혜자)가 돌아가신
뒤에 나는 그 사실을 질문할 곳이 없느니라”한 데서 나온 이
야기이다.
“잃은 이여,시루를 떨어뜨리고도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한
것은,후한(後漢)때의 맹민(孟敏)이 태원(太原)에서 객지생활을
했는데 한번은 시루를 지고 가다가 땅에 떨어뜨리고도 돌아보
지도 않고 갔다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곽임종(郭林宗)이 이를
보고 그 뜻을 물으니,대답하되 “시루는 이미 깨어졌거늘 돌아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하였다.임종이 그를 기이하게 여
겨 널리 유학(遊學)하기를 권고했다는 이야기이다.
뜻은 무제가 스스로 알아들었더라면 달마도 자기를 굽혀 남
을 따르지 말았어야 할 것이요,무제가 만일 알아듣지 못했거
든 소매를 털고 훌쩍 떠나야 한(恨)이 없었을 것인데 황금 대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