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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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나불나불[喃喃]황로를 읽는다”했는데,이는 어리석어
서 돌아올 길을 잃은 미혹한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준다는 것
을 송한 것이다.
나중에 당(唐)의 장종황제(莊宗皇帝)가 화엄사의 휴정(休靜)선
사를 궁내의 재(齋)에 청했는데 여러 대덕들은 모두가 경을 읽
었으나 선사의 일행만은 잠자코 있었다.황제가 묻되 “어찌하
여 경을 보지 않으시오”하니,유정이 대답하되 “나라가 태평
하니 천자의 영이 전해지지 않고 시국이 조용하니 태평가를 부
르지 않습니다”하였다.황제가 다시 묻되 “대사 한 사람만 경
을 보지 않는 것은 가하거니와 권속들은 어째서 보지 않는가?”
하니,휴정이 대답하되 “사자의 굴에는 딴 짐승이 없고 코끼리
다니는 곳엔 여우의 발자취가 없습니다”하였다.황제가 다시
묻되 “다른 대덕대사들은 어째서 모두 경을 보시는가?”하니,
휴정선사가 대답하되 “수모(水母:해파리)는 원래 눈이 없어서
먹이를 얻기 위해서는 고래에 붙어야 합니다”하니 황제가 크
게 기뻐하였다.
하물며 조사인 존자는 오랜 겁 동안 대세지라 불렸고,심히
깊은 수다라를 독송한 까닭에 스승에게 반야다라라는 이름까
지 받았건만 원래부터의 습기(習氣)도 제하지 못하여 화엄선사
에게 져서 그가 도리어 납승의 체통[巴鼻]을 갖게 하였으니 만
송은 이에 이르러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노라.일러 보라.무
엇 때문에 웃었을까?운거산의 나한(羅漢)이 옷깃을 헤치는 곳
이요,공현(鞏縣)의 찻병[茶甁]이 주둥이를 맞는 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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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을 헤침은 시원스레 이야기한다는 뜻이요,공현의 찻병은 주둥이가 두 개 있
는 것이 특징인데 그것이 맞닿는다 함은 역시 말이 많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