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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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시골 장단과 농주[社飮]만 있다면
-궁색한 도깨비들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게 됐군.
순(舜)의 덕,요(堯)의 인(仁)이야 아랑곳 있으랴?
-비로소 충과 효가 이루어지는구나.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당의 문종(文宗)태화(太和)6년(832)에 우승유(牛僧孺)가 재상
이 되었는데 상(上)이 묻되 “천하가 언제쯤에나 태평하겠소?”
하니,유가 대답하되 “태평은 형상이 없습니다.지금 사이(四夷)
가 침공하지 않고 백성이 흩어지지 않으니,비록 지극한 치세
는 아닐지라도 소강(小康)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폐하
께서 만일 이 밖의 태평을 구하신다면 신의 힘으로는 미칠 바
가 아니옵니다”하고는 물러가서 여러 차례 사직을 주청하여
회남(淮南)절도사(節度使)로 물러갔는데,만송은 이르노니 “이
것이 이미 본보기가 되었다”하노라.그러므로 촌로의 가풍에
는 격양가를 부르면서 예악(禮樂)이나 문장(文章)은 도리어 유
별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여릉의 쌀값은 깊고도 현묘한 것
이어서 순덕과 요인의 순후한 바람에 저절로 감화하여 시골 풍
류와 농가의 막걸리가 제자리를 얻었다는 것이다.밝은 달,맑
은 바람이 제각기 제 기능을 찾게 되었다 하리로다.알겠는가?
( 그리고는 방으로 돌아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