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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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으니 바라건대 화상께서는 대중에게
                법을 설해 주소서”하였으니 인의(仁義)의 편에서나 주객[主賓]
                의 도리로 본다면 그 또한 분수 밖의 짓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나 약산이 종을 치게 할 때,다만 우레같이 불호령 내리는
                것만을 보았으니 대중이 바야흐로 다 모인 뒤인들 어찌 별들
                [星斗]의 문채가 현란함을 알기나 했겠는가?

                  약산이 법좌에 올라 잠시 양구했다가 내려와서 방장으로 돌
                아갔다 하니,한바탕의 신통이 예사롭지 않거늘 원주가 뒤를
                따라가면서 묻되 “화상께서는 조금 전에 대중에게 설법을 해주
                시겠다고 하시더니 어찌하여 한 말씀도 하시지 않으십니까?”
                하였다.이에 대해 취암 지(翠岩芝)가 이르되 “약산이 법좌에서
                내려오자 원주가 당초부터 대중에게 설법치 않은 것을 수상히
                여긴 것은 가위 상대방의 삼군(三軍)의 위세를 잘못 봤다 하노
                라”하였거니와,만송은 이르노니 “그 장수가 용맹치 못하기

                때문이라”하노라.
                  약산이 이르되 “경에는 경사가 있고 논에는 논사가 있으니
                어찌 노승을 괴이히 여기리오?”한 것에 대하여 낭야 각(瑯琊
                覺)이 이르되 “약산이 법좌에서 내려온 것에 대하여 의심한 것
                까지는 무방하나 원주가 구슬림[拶著]에 이르러서 한쪽 눈을
                잃어버렸다”하였거니와,만송은 이르노니,“다시 완전케 회복
                하는 자가 능히 몇이나 되던가?그러면서도 두 눈알을 바꿀 줄

                모르도다”하노라.
                  설두(雪竇)가 이르되 “아깝다!약산이 평지에서 낙성을 당했
                는데 온 누리 사람들이 몽땅 붙들어도 일으키지 못하게 되었
                다”하였는데,만송은 이르되 “화상(和尙:설두)께서도 한 팔을
                내밀어 도우셔야지요”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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