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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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上 59
을 뽑아내는 수단이 있음을 보았는지 문득 자신을 버리고 남에
게 굽히는 자세로 한 말씀 대신 내려 주기를 청하였다.대지는
무외변(無畏辯)을 베풀어 살짝살짝 건드리면서 이르되 “인과를
매하지 않는다”하매 노인이 즉석에서 깨달았다.
사실에 의거해서 논한다면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한 것
은 없음에 치우치는 단견[撥無斷見]이요 “인과를 매하지 마라”
한 것은 흐름을 따라 묘함을 얻은 것이니,조그만치라도 교(敎)
를 이해하는 이라면 얼른 알아볼 것이지만 그러나 역시 털가죽
[毛衣:짐승]을 벗고 비늘조갑[鱗甲]을 입은 것에 지나지 않는
다.보지 못했는가.도원(道圓)선사가 남(南)선사의 회중에 있을
때 두 승이 이 화두를 들어 이야기하매,한 승은 말하기를 “설
사 인과를 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우 몸을 벗어나지 못한
다”하니,또 한 승은 대꾸하되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 한들
어찌 여우가 꼭 되겠는가?”하였다.선사가 그들의 말을 송연
(悚然)하고도 이상히 여기며 급히 황벽산 적취암(積翠庵)으로
올라가는데 개울을 건너다가 홀연히 크게 깨달았다.남공(南公)
을 보고 이 사실을 서술하는데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뺨을 뒤덮었다.남공이 시자의 방으로 가서 푹 자게 하였는데
갑자기 일어나 게송을 읊되 “떨어지지 않고 매하지 않음이여!/
승도 속도 본래부터 꺼릴 것이 없도다/장부의 기개가 왕과 같
으니/어찌 주머니 속에 감추거나 일산으로 가릴 수 있으랴!/
한 토막의 즐률장(楖栗杖:밤나무 지팡이)들고 마음대로 왕래
하니/돌여우가 황금털 사자떼 속으로 뛰어들었네”하니 남공
이 활짝 웃었다.
이렇게 볼 때 당초에 노인이 청하기를 “바라건대 화상께서
한 말씀 대신 내려 주소서”하였을 때 애초에 “인과에 떨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