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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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외도가 부처님께 와서 묻되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없음으로도 묻지 않는다”하니,세존께서 양구하셨다.이때
외도가 얼른 절을 하고서 여쭙되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셔서 저
의 미혹한 구름을 제거해 주시고 저로 하여금 도에 들게 하셨
습니다”하였다.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묻되 “외
도가 어떤 도리를 보았기에 도에 들어갔다 하옵니까?”하니,
부처님께서 대답하시되 “마치 세상의 좋은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하셨다.
그렇다면 약산과 세존이 동일하게 채찍을 들었으니 원주와
대중은 의당 찬탄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거늘 도리어 한 말
씀도 하시지 않음을 괴이히 여겼으니 가히 동토(東土)의 납자
가 서천(西天)의 외도만도 못하다 할 것이다.
천동이 이렇게 송하고 만송이 이렇게 설명한 것은 모두가
울음을 달래기 위한 단풍잎[止啼葉]과 같거늘 다만 여러 사람
들이 짙은 꿈을 깨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잠이 얕은 이는 한
번 부르면 얼른 깨고 잠이 깊은 이는 흔들어야 비로소 깨어나
거니와 또 한 무리는 흔들어 일으켜 놓아도 여전히 잠꼬대를
하는데,개인 밤 달빛에 둥지를 튼 학이 싸늘하고 맑은 바람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풍모와 견준다면 실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하리라.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도 역시 잠꼬대가 적지 않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