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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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않는다”고만 말했더라면 초심자들로 하여금 알음알이의 구
                덩이에 빠지는 꼴을 면하게 하였을 것이다.
                  어느 날 밤 백장이 상당하여 앞의 인연을 들자,황벽이 얼른
                묻되 “옛사람은 한마디 대답을 잘못 내리고 5백 생 동안 여우
                몸을 받았으니 다음다음 잘못 대답치 않으려면 어찌하여야 합
                니까?”하니 백장이 이르되 “가까이 오라.그대에게 일러주리

                라”하였다.황벽이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서 백장에게 따귀를
                한 대 갈기니 백장이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이르되 “여우의 수
                염이 붉다고 여겼더니 다시 수염 붉은 여우가 있도다”하였는
                데,앙산(仰山)이 이르되 “백장은 대기(大機:큰 바탕)를 얻었고
                황벽은 대용(大用:큰 작용)을 얻었다고 하는데 과연 헛되이
                얻어진 이름이 아니로다”하였다.
                  위산(潙山)이 이 화두를 들고는 앙산에게 묻되 “황벽은 항상
                이런 대기를 활용했는데 이는 하늘에서 나면서 얻은 것인가?

                사람에게서 얻은 것인가?”하니,앙산이 대답하되 “이는 스승
                에게 전해 받은 것이기도 하고,자기 성품에 갖추어진 종통(宗
                通)이기도 합니다”하매,위산이 말하되 “옳은 말이다.그 백장
                의 부자(父子)를 보건대 가고 옴에 두려움 없음이 마치 사자와
                같거니,어찌 여우의 굴속에서 살아갈 계교를 하겠는가?”하였
                다.
                  만송은 이미 꼬리뼈[尾骨]를 몽땅 드러냈거니와 다시 천동이

                손톱과 어금니 놀리는 솜씨를 내놓으리니 보라.


               송고
               한 자[尺]의 물,한 길[丈]의 파도여!

               -다행히 강은 맑고 바다는 평온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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