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선림고경총서 - 33 - 종용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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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中 121
놀라게 하였다”하였는데,만송은 이르노니 “닷새 뒤에 살펴보
라”하노라.
황벽은 또 이르되 “그대들 보지 못했는가?마대사 밑에 80여
인이 도량에 앉았었는데 모두가 그럭저럭할 뿐이요,대사의 정
안(正眼)을 얻은 이는 겨우 두세 사람이었고,그 중에도 귀종
(歸宗)이 가장 비슷했었느니라.대저 출가한 이는 이상에 말한
일의 갈피를 알아야 한다.그리고 사조 문하의 우두 융(牛頭融)
대사도 횡설수설(橫說竪說)했으나 위로 향하는 문빗장[關棙子]
은 여전히 알지 못했으니,이런 안목이 있어야 비로소 삿된 종
당인가 바른 종당인가를 가려낼 수 있느니라”하였다.
간략히 들어 여기에 이르렀거니와 이 화두의 시종[始末]을
알려면 그 뒤로 백십여 마디의 말씀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이
것이 최초에 출세하여 사람들께 보이신 말씀이기 때문에 제방
에 요란스레 퍼지고 있다.그 중에도 설두(雪竇)의 송과 불과
(佛果)의 평창(評唱)이 가장 상세한데 그래도 본록(本錄)에서의
상당(上堂)의 바른 뜻이 빠져 있다.이것을 천동이 송해 내니,
진선진미(盡善盡美)를 극진했다 하노라.
송고
갈래길 나누고 흰 실을 물들이기 지나치게 수고로웠고,
-아는 일이 적을 때 번뇌도 적고
잎을 엮고 꽃을 엮다가 조상[祖曹]들을 잊었네.
-아는 사람 많을 때엔 번뇌도 많다.
남쪽을 가리키는 조화의 칼자루는 묘한 손아귀에 있고
-하루아침에 권세가 손에 들어왔으니
물과 구름을 담는 그릇은 진도(甄陶)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