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선림고경총서 - 33 - 종용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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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화상께서 삼봉암에 계실 때에 노승이 일찍이 그에게 화두를
물었더니 대답치 못했는데 지금은 대답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
다”하였다.화주가 앞의 이야기를 고하니 흥화가 이르되 “운
거는 20년 동안에 겨우 하필이란 말 한마디밖에 못 했다.흥화
는 그렇지 않으니,어찌 불필(不必:그럴 필요가 없다)이라고
말한 것만 하겠는가?”하였거니와,만송은 이르노니 “토끼뿔의
길고 짧음을 다투는도다”하리라.
삼성(三聖)은 이르되 “운거가 20년 만에 이른 한마디가 겨우
흥화의 반달 거리에 비슷하다”하였거니와,만송은 이르노니
“허공꽃의 진함과 엷음을 다투는도다”하노라.
어떤 승이 각범(覺範)에게 묻되 “여러 노숙이 보이신 법에
차이가 있습니까?”하니,각범이 이르되 “부처님께서 바보비구
에게 비와 쓸음[苕箒]을 외우게 하셨는데 하루는 크게 깨달아
큰 변재를 얻었느니라”하였으니,이것으로 납자를 위하던 선
덕(先德)들의 마음씨를 알 수 있을 것이나 천동의 처지에서는
또 어떻게 보았을까?이렇게 송했다.
송고
한 구멍이 텅 비어 뚫렸고
-세로로는 삼제를 다했고
여덟 모가 영롱하게 빛난다.
-가로로는 시방에 두루했다.
형상도 없고 사사로움도 없이 봄이 풍류로 들어가니
-때에 맞추어 복을 받아들인다.
머무름도 걸림도 없이 달이 허공을 지난다.
-하염없이 앞개울에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