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2 - 선림고경총서 - 33 - 종용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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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험을 돌아보지 않고 이르되 “나설 때엔 어찌 됩니까?”하니,이
                미 독에 맞은 것이다.어떤 이는 이르되 “어찌하여 방(棒)이나
                할(喝)로써 정령(正令)을 행하지 않았을까?”하거니와,청림 역
                시 놓칠세라 이르되 “그대 목숨을 잃으리라”하였다.그 승이
                아픔과 가려움을 조금 느낀지라 벗어날 길을 찾아 이르되 “길
                에 나서지 않으면 어떻습니까?”하니,청림이 이르되 “그래도

                피할 곳이 없느니라”하였다.그리하여 청림 또한 모면할 길이
                없어졌고,그 승도 힘줄이 풀리고 힘이 다하여 이르되 “정히
                그러할 때에 여하튼 어쩔 수가 없으니,어찌해야 옳습니까?”
                하였는데,청림이 이르되 “도리어 잃었느니라”하였으니,사람
                을 살리는 솜씨를 여기서 볼 수 있다.불러들이기도 하고 내치
                기도 하고 사로잡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한다.그대에게 몽땅
                넘겨주었으나 따내서 가져가지 못하는 수가 있고 그대를 위해
                들어올려 주었어도 놓쳐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

                  승이 다시 이르되 “어디로 갔습니까?”하니,청림이 이르되
                “풀이 깊어서 찾을 수가 없느니라”하였으니,없다는 것이 아
                니라 볼 수 없다는 것뿐이다.그런데 그 승은 아직도 괴이하게
                여겨 이르되 “화상께서도 조심해서 지키셔야 되겠습니다”하였
                는데,청림은 한 마리의 죽은 뱀으로 그 승의 마지막 고집을
                뒤흔들어 허리에다 감아 주고 발에다 얽어 주노라 손뼉을 치면
                서 이르되 “한결같은 독기들이로구나!”하였거니와,만송은 이

                르노니 “하늘을 그을리고 땅을 달군다[熏天炎地]”하노라.
                  무진등(無盡燈)은 이르되 “청림의 듬직한 기개가 급하고 험
                준하여 한 세상의 빛일 뿐 아니라 여러 대의 표준이 될 것이
                다”하였는데,만송은 이르노니 “봄바람에 휘날리어 끝내 쉬지
                않으리라”하거니와,다시 천동의 꽃을 불고 버들을 흔드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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