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선림고경총서 - 33 - 종용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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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았다고 하였는데 오직 불과(佛果)의 격절(擊節)에만 이르되 “전
                명(傳明)이 처음에는 석루(石樓)의 법을 이었다”하였는데 석루
                는 분주(汾州)의 석루요,전명은 협산의 시호이다.
                  풍주(灃州)의 낙포산(洛浦山)원안(元安)선사는 오랫동안 임제
                에게 참문하면서 시자 소임을 보았는데 임제가 어느 날 이르되
                “임제의 문하에서 쓰는 한 대의 화살을 누가 감히 당하겠는

                가?”했다.어느 날 임제를 하직하니,임제가 이르되 “어디로
                가려는가?”하고 물었다.선사가 대답하되 “남쪽으로 가렵니
                다”하니,임제가 주장자로 한 획을 그으면서 이르되 “이것을
                지날 수 있거든 가거라”하기에 선사가 할을 하였다.이에 임
                제가 때리니,선사는 절을 하고 떠나서 제방으로 만행을 두루
                한 뒤에 협산의 마루턱에 이르러 암자 하나를 세우고 한 해를
                보냈다.
                  협산(夾山)선사가 이 소식을 듣고는 시자승 편에 글을 보냈

                더니,낙포선사가 받아들고는 털썩 앉으면서 다시 손을 내밀어
                편지를 내놓으라는 시늉을 했다.시자승이 말이 없으니,낙포
                가 문득 때리면서 이르되 “돌아가서 화상께 이 사실을 전하라”
                하였다.시자승이 돌아와서 사뢰니,협산이 이르되 “그 승이 편
                지를 보았으면 삼일 안에 올 것이요,편지를 보지 않았으면 구
                제하지 못할 것이다”하였다.과연 삼일 뒤에 와서 절도 하지
                않고 바짝 마주 서니,협산이 이르되 “닭이 봉의 둥지에 끼여

                들었다.같은 종류가 아니니,나가라”하였으니,제각기 무명의
                잡초를 헤치고 열반의 서늘한 바람을 쏘이면서 행각한 안목을
                등진 것이다.
                  낙포가 협산이 보낸 시자승을 보고 돌려보낸 것은 도리어
                만류한 것이 되었지만,이미 온 이는 어찌 빈손으로 돌아갔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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