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선림고경총서 - 33 - 종용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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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中 59


               한 곡조의 이소가(離騷歌)로 돌아온 뒤에는
               -어디로 갔는고?
               멱라강(汨羅江)위에 홀로 깬 사람 됐네.

               -낙포도 있지 않은가.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옛사람이 긴 무지개로 낚싯대를 삼고,초생달로 낚시를 삼고
                조각구름으로 낚싯밥을 삼아,청진에서 자비의 배를 띄우려면
                검협(劒峽)에는 먼저 나무거위를 띄웠었다.항주(杭州)오운(五
                雲)화상의  좌선잠(坐禪箴) 에 이르되 “검각의 흐름을 따라가려
                면 나무거위 띄우기를 지체하지 마라.대체 검협은 물이 급하
                고 골짜기가 좁아서 두 배가 서로 부딪치면 반드시 부서진다.

                그러므로 먼저 나무를 쪼개서 띄워 내려야 하나니,이를 나무
                거위라 한다”하였다.제방에서는 다르게 말하기도 하나 신빙
                하기 어려우니, 선잠 을 좋은 증거로 삼는 것만 못할 것이다.
                  “나이 늙고,마음 외로워 금빛 비늘을 얻지 못했다”한 것을,
                모르는 이들은 낙포가 후계자가 없기 때문이라 하는데 낙포는
                무릇 열한 사람을 얻었으니,오아(烏牙)․청봉(靑峰)등은 모두
                가 백미(白眉)의 노작가이다.
                  막막암(莫莫庵)눌(訥)화상은 시에서 이르되 “고금에 술로 이

                름난 사람들/모두가 흠뻑 취하면 호걸․영웅 되었다/못가에
                초췌하게 오가는 이/혼자만 깨었다기에는 합당치 않다!”하였
                다.
                  굴원(屈原)의 자는 평(平)이니,초(楚)의 회왕(懷王)에게 벼슬
                하여 삼려대부(三閭大夫)에까지 이르렀으나 근상(靳尙)이라는
                사람의 모함을 받아 장사(長沙)로 귀양을 갔다.강가를 홀로 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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