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9 - 선림고경총서 - 34 - 종용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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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下 119
나 구지가 전혀 대답을 않으니 실제는 그냥 떠나려 했다.구지
가 이르되 “날도 저물었으니 하룻밤 묵어 가라”했더니,실제
가 대꾸하되 “바로 이르면 묵어 가리다”했으나,구지가 역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실제가 떠난 뒤,구지는 스스로 탄식하기를 “나는 비록 대장
부의 모습은 갖추었으나 대장부의 기개가 없도다”하고는 암자
를 버리고 제방으로 다니면서 참문할 것을 결심했는데,그 날
밤 꿈에 산신이 이르되 “스님은 여기를 떠나려 하지 마십시오.
머지 않아 큰 보살이 오셔서 화상이 되어 설법해 주실 것입니
다”하더니,과연 열흘쯤 지나 천룡(天龍)화상이 이르렀다.
구지가 정성을 다해 영접하고 앞의 일을 자세히 사뢰니 천
룡이 손가락을 세워 보이매 당장에 크게 깨달았다.이로부터
무릇 승이 와서 물으면 오직 손가락 하나를 세울 뿐 달리 제창
하는 바가 없었다.기르고 있던 동자가 밖에서 사람들에게 “화
상께서는 어떤 법요를 말씀하시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동자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돌아와서 구지에게 이 일을 이야
기하니 구지가 칼로 그 손가락을 끊어 버리매,동자가 아파서
소리를 지르고 달아나는데 구지가 부르니 동자가 고개를 돌리
자 구지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니,홀연히 깨달았다.구지
가 임종할 때 대중에게 이르되 “내가 천룡의 일지두선(一指頭
禪)을 얻은 뒤 일생 동안 써도써도 다 쓰지 못했다”하고는 열
반에 들었다.이에 만송은 이르노니 “그 손가락을 끊어주었으
면 좋았을 것이다”하노라.
장경(長慶)이 대중을 대신하여 이르되 “아름다운 음식이 배
부른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다”하였는데,만송은 이르노니 “향
기로운 미끼[香餌]를 탐내지 않으니 가히 푸른 못 속의 용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