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선림고경총서 - 34 - 종용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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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下 127


                16년 동안 근기에 따라 설법했다.대력(大歷)10년(775)12월 9
                일 오른쪽 겨드랑이를 땅에 대고 영원히 떠나니 시호를 대증선
                사(大證禪師)라 하였다.
                  불과(佛果)가 이르되 “많은 사람이 ‘국사의 말없음이 그대로
                가 탑의 본이라’하거니와,만일 그렇게 이해한다면 달마의 한
                종은 비로 쓴 듯이 사라질 것이요,벙어리가 도리어 선을 이해

                하게 될 것이다”하였다.옛날에 두 승이 제각기 암자에 머물
                렀는데 열흘 이상 서로 만나지 못한 적이 있었다.이때 위의
                암주가 묻되 “여러 날 보이지 않으니 어디에 있었는가?”하니,
                아래 암주가 대답하되 “암자 안에서 무봉탑을 만들고 있었다”
                하였다.위의 암주가 이르되 “나도 그것을 만들고자 하는데 그
                대에게 그 본을 빌리고 싶다.빌려주겠는가?”하니,아래 암주
                가 이르되 “어찌 진작 그 말을 하지 않았는가?하마터면 딴 사
                람에게 빌려줄 뻔하였다”하였다.이에 법안이 이르되 “일러

                보라.그에게 빌려준 것인가,빌려주지 않은 것인가?”하였는
                데,만송은 이르노니 “국사는 말이 없었거늘 아래 암주는 어찌
                하여 도리어 가닥을 지어 도리를 말했는고?”하노라.
                  설두(雪竇)가 이르되 “숙종이 알지 못한 것은 그만두고라도
                탐원은 알았던가?다만 한마디 ‘탑의 본을 청합니다’할 줄만
                알았건만 서천과 이 땅의 여러 조사들이 몽땅 그 한 수작을 만
                나면 모두가 남쪽을 북쪽으로 여기는 꼴을 면치 못했다 하노

                라.곁에서 내 말을 긍정치 않는 이가 있는가?있거든 나오라.
                내가 그에게 물으리니 ‘어느 것이 무봉탑인고?’하리라”하였
                는데,만송은 이르노니 “옳지 못한 말은 즉석에 이르더라”하
                노라.
                  길주(吉州)탐원산(眈源山)진응(眞應)선사는 마조(馬祖)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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