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3 - 선림고경총서 - 34 - 종용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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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下 183
라”하고는 옷가지와 물건을 모두 시자에게 주고,대중에게 공
양을 내게 하고 그 날 초저녁에 종소리를 들으며 앉아서 떠났
다.
시자가 생각하되 “지난날 부르라고 약속하였더니라”하고는
드디어 세 마디를 부르니,대각이 대꾸하되 “왜 그러느냐?”하
였다.시자가 이르되 “어찌하여 알몸에 맨발로 떠나십니까?”
하니,대각이 이르되 “올 때에는 무엇이 있었더냐?”하였다.시
자가 억지로 옷을 입혀 드리려 하니 각이 이르되 “그만 두었다
가 후인에게 주라”하였다.시자가 다시 묻되 “이럴 때엔 어떻
습니까”하니,각이 이르되 “그저 그러니라”하고는,다시 게송
한 수를 읊되 “73년 번개 치듯 지났는데/떠나기에 앞서 그대
에게 한 가닥 길을 터 주노라/무쇠소가 팔짝 뛰어 신라를 지
나가다/허공을 흔들어 깨니 일곱․여덟 쪼가리더라”하고는
엄연히 앉아서 떠나시니,세속의 나이는 73세,때는 황통 3년 5
월 5일이었다.
동산은 병들지 않은 것을 알았고 대각은 죽지 않는 존재를
알았으니,그 까닭에 두 노숙은 가고 옴에 자유하다는 것이다.
천동이 염(拈)하고 이르되 “갈 수 있으면 올 수도 있고,올 수
있으면 갈 수도 있다.나는 그를 보살필 의무가 있다지만 그가
나를 보살핌은 그렇지 않다.바야흐로 이럴 때를 당하여 어떻
게 이해해야 할꼬?”하고,양구했다가 이르되 “묵은 안개가 아
직도 짙어서 정수리는 보이지 않으나 봄바람은 언제나 싹트지
않은 가지에 있다”하였으니,천동이 염하여 드러낸 것은 사리
[事]전체의 바탕이라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거니와 송에는
옛사람이 매우 힘쓴 곳을 보였으니 어떻게 송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