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선림고경총서 - 34 - 종용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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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下 57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문수(文殊)가 유마(維摩)에게 묻되 “몸은 무엇으로 근본을 삼
는가?”하니,대답하되 “탐욕으로 근본을 삼는다”하였다.다시
물었다.“탐욕은 무엇으로 근본을 삼는가?”“허망한 분별로 근
본을 삼는다.”“허망한 분별은 무엇으로 근본을 삼는가?”“뒤바
뀐 생각[顚倒想]으로 근본을 삼는다.”“뒤바뀐 생각은 무엇으로
근본을 삼는가?”“머무름 없음으로 근본을 삼는다.”다시 묻되
“머무름 없음은 무엇으로 근본을 삼는가?”하니,대답하되 “머
무름 없음은 근본이 없나니,문수사리여,머무름 없는 근본으
로부터 모든 법이 세워집니다”하였는데,조공(肇公)은 주에서
이르되 “마음은 물 같아서 고요하면 비춤이 있고,움직이면 비
춤이 없다.어리석음과 애욕 때문에 흐려지고,삿된 바람에 나
부껴서 파도가 출렁여 잠시도 머무른 적 없으니,이것으로 모
든 사물을 관찰한다면 어떤 법이 뒤바뀌지 않을쏘냐?비유컨대
출렁이는 물결 위에다 자기의 얼굴을 비추고 자기 본래의 모습
이 왜 그러냐고 꾸짖을 자는 아무도 없는 것과 같다”하였다.
또 이르되 “만일 마음의 움직임으로 하여 근본을 삼으면 존
재[有]는 형상을 인하여 생긴 것이나 진리를 궁극하면 처음의
움직임은 다시 근본이 없는 것이요,만일 없음[無]이란 법으로
근본을 삼으면 존재는 없음을 인하여 생긴 것이나 없음이 없음
을 원인으로 할 수는 없으므로 다시 근본이 없다”하였고,또
이르되 “머무름이 없기 때문에 뒤바뀌게 생각하고,뒤바뀌게
생각하므로 분별하게 되고,분별하므로 탐욕을 부리게 되고,
탐욕을 부리므로 몸이 있고,이미 몸이 생기고는 선과 악이 동
시에 일어나고,선과 악이 동시에 일어나면 만 가지 법이 일어
나서 이로부터는 말이나 수효로써 다할 수 없게 된다”하였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