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선림고경총서 - 34 - 종용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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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암이 우두커니 생각에 잠기니
               -부끄러워할 줄은 아는구나!
               암두가 이르되 “긍정하면 근과 진[根塵]을 벗어나지 못하고

               -거기에는 긍정할 길도 없는데…….
               긍정치 않으면 영원히 생사에 빠지리라”하였다.
               -당에 들어와서도 바르게 앉지도 않거늘 어찌 양쪽 변죽에 나아갈 리
            있으랴?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태주(台州)의 서암산(瑞岩山)사언(師彦)선사는 민(閩)지방 사
                람으로 성은 허(許)씨다.처음에 암두(巖頭)에게 참문하여 이름
                과 자(字)를 청했더니,본상리(本常理)라는 호를 내렸다.
                  암두는 때로는 놓쳐 버리고는 그저 비추어 꿰뚫어 주려는
                생각만으로 이르되 “움직였다”하였으니,서암은 운이 좋았는
                지라 30방은 맞아야 좋을 것인데 다행히도 어떻게 벗어났을까?
                그는 도리어 위태로움도 돌보지 않고 이르되 “움직일 때가 어
                떠합니까?”하였으니,범의 머리를 껴안고 꼬리를 얽은 격이다.

                암두는 반쯤 취하고 반쯤 깬 상태에서 또 놓쳐 버리고 그저 비
                추어 꿰뚫어 주려는 생각만으로 이르되 “근본답게 항상한 이치
                를 보지 못했느냐?”하였으니,사물을 용납하는 대가들의 아량
                이 이러한 것이다.
                  서암이 우두커니 생각에 잠겼으니 여기야말로 바로 마른나
                무 바위 앞에 갈림길이 많다는 경지일 것인데 암두는 이미 목

                숨을 아끼지 않는 터라 그에게 도망칠 길을 끊어서 양지 바른
                서울 길을 활짝 열어 주고자 이르되 “긍정하면 근과 진을 벗어
                나지 못한 것이요,긍정하지 않으면 영원히 생사에 빠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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