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선림고경총서 - 34 - 종용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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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下 73
불조의 해골을 한 꼬치에 꿰어 버려야 가히 불조의 스승이
될 것이며,가히 비로자나불의 정수리로 뚫고 나와서야 걸어다
니다가 다시 와서 화신불의 혀끝에 자리하고 앉았다 하리라.
“궁내의 물시계 적막한데 은밀히 화살을 전한다”한 것은 은
기(殷夔)의 누각법(漏刻法)에 “그릇을 둥글게 세 겹으로 만들되
지름이 한 자[尺]가 넘게 하여 차례차례 방여(方輿)와 지주(踟
躕)위에 세우고 금룡(金龍)의 입을 만들어 물을 토하게 하고
다시 지주와 경위(經緯:복판)로 흘러들게 한다.뚜껑 위에는
금으로 사신(司晨)을 부어 만들되 의관을 갖추고 두 손에는 화
살을 잡은 모습으로 한다”하였다.
또 군진에서 밤중에 은밀히 화살을 전하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가 조짐이 나타나기 전에 깨달으면 가히 불조의 스승이 될
수 있거니와 자칫 금시(今時)에 떨어지면 두 번째가 되어서 인
천의 길 위에서 조그마한 쉼터[小歇場]가 된다는 것을 말한 것
이다.
심지관경(心地觀經)에서는 전광삼매(電光三昧)라 했는데 납
승들은 이를 일러서 깜짝하는 경지[瞥地處]라 한다.이런 경지
에 이른 이는 때로는 불조의 머리 위로 다니고,때로는 인천의
길을 달리기도 하고 검은 암소의 무리나 딴 종류 속을 누비고
다닌다.
왕형공(王荊公)의 배우 구경[觀俳優]이란 시에 “배우들의 굿
판에/누구는 귀하고 누구는 천하랴/마음과 식견이 본래 같기
에/기쁨도 원망도 없다”하였고, 장자(莊子) 천지편(天地篇)
에 이르기를 “황제(黃帝)가 적수(赤水)의 북쪽에 가서 곤륜(崑
崙)의 언덕에 올라 남쪽을 구경하고 돌아올 때 현주(玄珠)를 잃
었는데,지(智)로 하여금 찾게 했으나 찾지 못했고,이주(離朱)